생각

소비를 위한 일상

enattendant 2020. 11. 18. 13:01

1. "삶이 일상의 연속이라면, 일상이 행복하지 않은데 인생이 행복할 리 없다. 소확행을 일방적으로 예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소비와 소비문화가 우리 사회에서 갈수록 중요해지며, 따라서 앞서 말했듯 소비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사유가 요구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 김호기 (2020.11.17). 일상이 불행한데 인생이 행복할까...'소확행'이 던지는 질문, 김호기의 굿모닝 2020년 <한국일보>

 

2. "FLEX... 그거 참 슬픈 말인 것 같아요" - <갈라파고스 세대> 저자 이묵돌 인터뷰 중

 

3. "We Are the Money-friendly Generation" - 자본주의 키즈 , 트렌드 코리아 2021의 키 프레이즈 COWBOY HERO 중 W에 해당

 

소비에 대한 철학은 개인의 정치관이나 세계관만큼이나 다양하다. 어쩌면 개인의 정치관과 세계관의 가장 중심에 소비관이 있을 수도 있다 - 본인의 관심사와 가치관이 가장 맞아떨어지는 쪽에 돈을 쓰기 마련이니까. 오늘은 내가 돈을 어디에 주로 쓰는지, 그리고 내가 해석한 소확행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조금 정리해보려 한다.

 

피터 드러커는 누군가가 말로 얘기하는 본인의 신념보다 그 사람의 계좌와 캘린더를 보면 무엇을 중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아무래도 카페와 식당, 책, 신문 구독과 YouTube Premium, 그 외 교통비와 통신비에 대부분의 소비를 한다. 카페와 식당은 밖에 나가면 뜨는 시간이 있거나 wifi를 안정적으로 제공받으면서 오래 있을 수 있는 곳을 찾아서이고, 책은 그저 지적 허영심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본능에 충실하고 아무래도 먹는 것이 아주 중요한 단순한 사람이다. 사람을 많이 만나지는 않지만 한번 사귄 친구는 오래 만나는 편이라 친목에도 돈을 꽤 쓰는 편이다. 지금의 나의 소비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에 따로 소확행을 실천할 만큼 나에게 "소소한" 금액이란 없다. 그저 외식과 함께하는 확실한(?) 행복만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소비를 일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나는 수입원이 필요하다. 반대로 또 그 수입원을 만들기 위해서 형성된 나름의 일상도 있고. 그런데 그 일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프랑스어로 일에 묶인 현대인들을 표현하는 재미있는 말이 있다. 일명 metro-boulot-dodo인데, 지하철(metro)을 타고 일터로 가서 일(boulot)을 하고 , 돌아와서 쿨쿨 자는 (dodo) 현대인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처음 불어로 색깔 배우고 자기소개를 익힐 때부터 저 표현은 교재에 소개되어 있었다. "'메트 로불로 도도' 이거 소리 한번 재밌네!" 하면서 배웠던 기억이 난다. 1번 인용문처럼 삶이 일상의 연속이라면, 매일 아침 피곤한 직장인들을 꽉꽉 채워서 다니는 지하철에 내 몸을 싣고, 일을 하다가, 똑같은 전철을 타고 퇴근을 하고 그것을 월-금 반복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또 근속 년수를 곱하는 것이 결국 삶이 되는 것이다. 

 

안정적인 수입원을 만들어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수입원을 만들기 위한 일상이 불행한 것이 대다수의 삶이라면 지나친 일반화일까? 오전 8시의 2호선에서 출근하는 회사원들의 표정을 보고 있자면 꼭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근본적으로 눈을 뜨자마자 맞닥뜨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상"이 소소한 소비로 인해 행복으로 이어질 수 없다고 본다. 정말 별로였던 하루에 완벽하게 구워진 마카롱이나, 맛있는 케이크 한 조각은 근본적인 행복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주말이나 휴가만을 위해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나름 고안해낸 방법은 반드시 반드시 반드시 하루에 15분이라도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신문을 읽는 거든, 유튜브를 보는 거든, 친구를 만나거든, 그리고 본인의 현재 루틴이 어딘가로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향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나조차도 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아무도 그 믿음을 덮어씌워주지 않는 현실이라. 그리고 아무래도 피할 수 없는 일상이라면, 조금이라도 의미부여를 한다는 것 (ex: 오늘은 길냥이가 안 나와있네?) - 써놓고 보니 나도 별 수 없다!

 

Afterthought: 

한국 청년들만의 문제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 아무래도 다른 나라보다는 우리가 좀 더 우울해하지 않나라고 생각을 하곤 했다. 얼마 전, 오랜 친구와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유럽 청년들도 "작년에 딱 몇 주 아프리카로 떠난 째지는 휴가" 이외에는 삶이 무미건조하다고 해서, 어딘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사람 사는 거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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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불행한데 인생이 행복할까… ‘소확행’이 던지는 질문

[김호기의 굿모닝 2020s] <48> 소비

ww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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