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나라, 남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서 나도 피해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다 보니 오늘은 PD님께서 의뢰하신 N포 세대 관련 녹취록을 풀다가 매우 큰 현타가 왔다. 나의 얘기이군. 나의 20대는 현타의 연속이었고, 즐거움도 가면일 때가 많았다. 오히려 있지도 않은 즐거움과 여유로움을 침착함이라고 착각하면서 살았던 적도 많고 나 자신과의 관계가 크게 좋지 않아서 다른 안 좋은 영향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내가 남들보다 불행하거나 우울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인생을 미션을 하나하나 클리어하면 새로운 더 어려운 미션이 남아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듯하다.
요새는 새로운 낙천주의를 실천하려고 하고 있다. 대책 없는 낙천주의의 무모함을 몸소 느껴보았기 때문에!
오늘 일하다가 물컵을 쏟았는데, (다행히 내가 방에 물을 들고 오면 95%의 경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평소의 나 같았으면 바로 욕이 올라오면서 한숨을 쉬면서 언제 다 닦고 유리판 내려서 물기 빼고 밑에 이면지 함 치우나 이러고 있었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 어 물이 쏟아졌네? 그럼 해결해야지. 그래서 일부러 최근에 꽂힌 마인 OST (Dear son - 혹시 위로가 필요하거나 높은 음역대에서 잔잔하게 부르는 곡을 좋아하신다면 한번 들어보시라)를 틀어놓고, 오랫동안 물청소를 하지 않은 책상을 치울 수 있다는 생각에 즐겁게 임했다. 먼지도 닦아내고, 오랫동안 읽지 않은 책들도 다 한 번씩 내려놓고, 책상 위 유리판도 말리고, 방바닥에 앉아서 피피티 보고 그랬다. 아 물론 이 모든 것은 물이 컴퓨터나 전자 기기 쪽으로 안 쏟아졌기 때문에 가능했을 수도 있다. 여하튼, 그렇게 책상 위 물건들을 다 닦고 이면지 함도 말리고 하니까 기분 전환도 되고 나쁘지 않았다.
나 정말 솔직한 거 좋아하고, 거짓말 싫어하는데, 또 자존심은 세고, 자존감은 낮은 편이다. 이 4가지의 조합은 내면에도, 대인 관계에도 좋지 않다. 필사적으로 고치려고 노력 중이다. 일단 자존감 향상의 많은 부분은 체력에서 온다는 것을 알았고, "여론 파악"이라는 명목으로 뉴스와 (주로 학교) 익명 커뮤니티를 붙잡고 산다는 것이 진짜 정신 건강에 안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 안 보고 안 듣는 것이 필요하다. 마음에 들지 않거나 뒤쳐진다고 느끼는 부분들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의 것임을 인정하고 타인의 삶이 아닌 나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있는 패로 게임을 해야지, 없는 패로는 못하니까? 그러다 보면 또 길이 생기고, 귀인을 만나게 되고, 정말 운이 좋으면 꿈도 이루게 될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인생이 잔인하고 슬픈 면도 많지만 아름답다고도 느낀다. 그리고 힘듦이 약간 한국 고유의 정서는 아닌데 himdeum이라고 romanize 해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동북아 3국에서 유난히 많이 느껴지는 초경쟁 사회에서 오는 무기력함과 우울"이라고 등재해도 좋을 만큼 문화적인 부분이 크다고도 생각된다. 모른다, 사실 외국 국적 애들도 힘들겠지, 아니 오히려 고용상황이나 보이지 않는 편협함은 더할 수도 있다 (최근 문제 되고 있는 Asian hate만 봐도). 근데 정서적인 학대에 가까운 몰아붙임과 "이생망" 정도의 내러티브는 이쪽 문화권에 고유한 것일 수도 있다. 많이 오픈해지고 있는데 오늘 녹취한 인터뷰이 말대로 한국은 극단의 오픈마인드와 편협한 사고가 공존한다 -- 뜨아 너무 맞는 말이다.
결론은 없다. 오픈 결말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이기는 것은 내가 동경하는 좋은 뷰의 큰 창의 집, 많은 친구, 멋진 커리어, 행복한 가족이 아니라 내면이 조금 더 편안해지고 안정적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될까? 나도 계속 들여다보고, 시야도 계속 확장하고, 목적성이 없는 봉사, 대가 없는 친절, 편견 없이 사람 대하기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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