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멍청하게 투자은행 인턴 면접을 보기 전에 <빅 쇼트> 영화를 봤고
그 여운이 너무 강하게 남아서인지 면접 내내 인상을 쓰고 있었다. 아, 마침 커넥션도 좋지 않았으니 어쩜 안 풀릴 운명이었었나 보다.
VC 면접에서 왜 지원했냐는 물음에 너무 솔직히 대답해서 파트너님께서 "아 그래도 어느 정도는 숨기고도 말해야 되는데 너무 솔직하시네 ㅎㅎ"라고 하셨다.
한탄도 아니고 동정을 유발하고자 하는 것도 아닌고 그냥 팩트 한 가지.
INFP는 살아남기 힘들다. 일반적인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것들이 이해가 안 가는 것들이 수만 가지인 데다가 내 마음이 납득하지 않으면 가볍게 사회적 룰도 무시하고 살아나가는 깡도 있지만 뒤이어 그 깡과 용감함이 후폭풍처럼 몰려온다. 내가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고 싶다, 다음 생에는 핀란드 숲의 나무로 태어나겠다, 지방에 내려가서 농사짓겠다, 이민 가겠다, 사과주 농장을 운영하겠다, 등등 약간은 현실성 떨어지는 얘기를 많이 하는 것은 허풍이 아니라, 진짜 그러고 싶을 만큼 이해가 안 가는 것들이 많아서이다. 혹자는 나를 두고 자유로운 영혼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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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본래의 성격은 현실감각이 매우 무디고 둔한 편인 것을 알기 때문에 일부러 투자 관련 팟캐스트를 듣는다. 미국에서 자산 운용하는 분이 진행하시는 거 같은데. 좋다. 부담 없다. 찰지다. 저렇게 동기부여 잘되어 있는 사람들, 루틴이 딱딱 짜인 사람들, value creation 어쩌고, innovation 어쩌고 저 세상 얘기 같다. Opportunities, niche, bitcoin, cryptocurrency... 음 그렇구나.
각 에피소드가 끝나갈 무렵 진행자가 게스트에게 묻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What is the kindest thing anyone has done for you?"다.
딱 이 질문에 대한 대답만이 같은 인간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게끔 한다.
팟캐스트 게스트들의 대답은 다양하다. 보통은 가족의 사랑, 은사님의 베풂, 학창 시절 베프의 친절, 배우자의 헌신 등을 든다. 결국 그 뻔하고도 클리셰 투성이인 그 말, unconditional love 이게 성공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사실 지금 나는 성공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말은 그렇게 해도 속세를 떠날 용기는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의 한 일원이 되고 싶은 바람뿐이다. 나의 존재를 인지한 아주 어렸을 적부터 시크함과 반어법을 체화해서 뭐든지 의심하고, 좋다는 것을 좋다고 표현을 못한 거 같다. 모두에게 퍼줄 필요도, 나는 그럴 착함과 인내도 없지만 그래도 소수의 믿을 수 있는 몇 명에게는 영화 같은 사랑과 친절을 베풀어도 꽤 괜찮은 삶일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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