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나온 곳들 중에서 서울 이내이면서 내가 접근 가능한 곳들은 가보길 좋아한다.
정릉이랑 부암동, 평창동 주택가는 종종 드라마나 영화 (주로 로맨스)에 나온다. 가면 사실 별거 없다. 조용하고 한적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화롭다. 약 24살 때부터 왠지 모르게 평화에 집착하게 된 거 같은데, 사실 우리 동네도 무척 평화롭다. 성수나 서울숲도 가깝고, 정겨운 마장동도 있고, 2km마다 동네마다 분위기가 확확 바뀌는 한강 물줄기를 따라 걷거나 뛰다 보면 "이야 서울 살맛 나네"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런데 사실 평화는 풍경이나 환경에 있지 않다. 내면이 평화롭지 않으면 파리를 가든, 몰디브를 가든, 라스베이거스를 가도 다 그저 그럴 것이다. 이걸 가장 크게 실감한 것은 내가 예전에 휴학하고 친구들 학교 다닐 때 잠깐 프랑스에 갔을 때 느꼈다. 그토록 가고 싶었지만, 그 낭만이나 환상을 공유하느라 바빠서 카톡으로 사진을 전송하기에 바빴고, 숙소 방에서도 내 내면을 벗어나지 못해서 오히려 몸은 멀어졌지만 내 고민과는 더욱 하나 되는 기이한 경험을 해보았다.
여행이 가져다 주는 평화는 어째 반감된 거 같으나, 강제로 안 하게 되니 낯선 노선의 버스로라도 반여행 같은 걸 한다. 눈 앞의 빌딩의 구조와 동네 분위기만 바뀔 뿐인데, 가히 refreshing 할 때가 있다. 여기서 포인트는 길이 막힐 수 있는 시간대를 피하고, 너무 서울 외진 곳으로 가서 집에 돌아올 때 곤혹스럽지 않을 정도의 목적지를 정해놓고 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짧은 여행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사실 똑같다. 똑같은 상황, 똑같은 고민, 몇 년째 일어나자마자 하는 똑같은 생각 - 바뀐 건 없다. 오랜 여행을 마치고 캐리어 끌고 집에 오는 그날은 아직 그 설렘이 가시지 않았지만 한 며칠 지나면 또 똑같아지는 것처럼.
사람들이 묻는다.
"어디가 제일 좋았어?"
사실 다 좋았고, 다 조금씩 힘들었는데, 주변 인프라나 환경, 풍경 상관 없이 그냥 내가 제일 즐거웠던 곳이 제일 좋았다. (지금 까지는 호찌민이다 - 그리고 그리운 건 그 나라가 아니라 "때"였던 것)
빨리 한국에 작별을 고하고 "안녕히 계십쇼 저는 떠납니다" 하고 싶었는데, 해외에 간다고 더 자유로워지거나 더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과감하게 사는 데에는 아주 많은 준비와 인내심, 계산기 두들여서 견적 내기가 필요하다. 오히려 지금까지 살아온 해외생활과는 아주 다른 양상을 지니게 될 것임을 알기에 어떠한 안전장치를 만들어둔 상태에서 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그게 사람이든, 직업이든, 뭐든 간에.
그래서 어쨋든 버스 여행이 주는 교훈은 : "야 너, 잘 생각해"다. 정말 환경과 나라가 문제인지, 내 내면의 문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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