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 창의적 자유
나의 10대와 20대를 함께한 TV 속 셰프. 거친 입담과 쿨내 풀풀 나는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지만, 너무도 인간적이고 누구보다도 다른 문화권, 새로운 음식, 사람 사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던 장신의 셰프이자 작가였던 진행자 (사실 그가 190센티의 장신인 것은 진행을 잘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지만, 비율이 어마 무시하게 좋아서 티브이 나오는 사람으로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가 몇 년 전에 프랑스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을 때 가장 많이 달린 추모 댓글이 바로 "비록 그를 실제로 알지는 못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그의 죽음이 개인적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보르뎅은 약 44세까지 뉴욕에서 월세도 제때 못 내는 요리사였는데, 뉴요커 잡지사에 기고한 딱 하나의 에세이로 오만불짜리 커미션을 받게 되고, 이후 방송사의 제안으로 No Reservations, Layover, Parts Unknown 등 보르뎅 특유의 감각적인 여행 요리프로들을 탄생시킨다.
어렸을 적 수많은 케이블 TV 채널들이 깔려있던 집에서 나는 유난히 디즈니나 카툰네트워크, 니클로디언보다는 여행 채널을 좋아했다. 엄청나게 지적이면서도 f-word을 남발하고, 술과 마약 중독에 대한 얘기를 스스럼 없이 하는 그는 가식이라고는 없는 진행자였다. 그렇게 자주 욕을 남발하면 사람이 없어 보이기 마련인데, 그는 고든 램지보다도 욕을 잘 체화시킨 사람이다 - 욕을 하지 않는 보르뎅은 팥이 빠진 붕어빵이랄까...
여하튼 그는 카메라 앵글이니, 연출이니, 진행이니, 로컬 식당 섭외니 모든 면에 있어서 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자연스러웠고, 무엇보다도 진부하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 창의적 자유를 가진 것만으로 엄청나게 복 받은 사람이었다고. 또 그런 창의적인 시도들을 서포트해줄 수 있는 "보르뎅 크루"가 있었는데 그의 팀원들은 유머 감각이 있고, 영화를 사랑했으며,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I abhor competent work"
우리 모두 커리어를 쌓고, 같이 일하거나 공부하거나 평가를 받을 때 유능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데, 그는 유능하기(만) 한 것은 증오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깔끔하고 반듯하고 누가 봐도 잘 만든 프로보다는 뭔가 어딘가 새롭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그렇다고 너무 기이하지는 않아서 시청자들이 적당히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까. 호불호는 있겠지만 묘한 매력이 있는 아저씨였다.
보르뎅이 예상보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떳지만, 그래도 코로나로 이동이 많이 힘들어진 시대에 그가 출연한 잘 짜인 40분짜리 영상들을 유튜브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비록 지금 당장 내가 시칠리아에서 하몽을 먹거나, 베트남 산간에서 오리 요리나 아르헨티나에서 째지는 스테이크를 먹지는 못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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