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중 평일 밤에 내가 글을 쓰는 것은:
1/ 아직 덜 바쁘거나
2/ 바쁘지만 할 말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일단 한번 비워내야 되거나
3/ 바쁨과 상관 없이 반드시 기록해야 될 일이 생겼거나
인데, 오늘은 2와 3이다. 요즘은 다시 거리두기를 잘하고 있고, 하는 일도 80%가 재택, 20%가 대면이라 내가 너무 좋아하고 즐기는 흥미로운 오프라인 대화를 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그래서 낯간지러움을 무릅쓰고 가히 넷상 1인극이라고 볼 수 있는 블로그, 인스타그램 그리고 유튜브를 굉장히 열심히 하는 중이다.
예전에 한번 쓴 적이 있는 기분 좋은 우연 이 함꼐한 날이기도 하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반가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다른 노이즈 없이 유명인들 글만 팔로우하기에는 매우 유용한 플랫폼이 되었다. 나는 정재승, 김상욱,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 유지원 작가님 등의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성격인지 미디어에 비춰지지 않는 집에서의 사적의 모습이 어떤지 전혀 모른다. 아주 잠깐 물리적 공간이 겹치거나 실제로 주기적으로 뵌 분들도 있지만 그때의 짧은 감상으로 저 사람이 어떻다는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게다가 그분들이 얼마나 필터링을 거쳐서 전체 공개글을 쓰는지도 내가 알리 없지만, 어쨌거나 내가 받아들이는 그들의 자아와 성격은 글로 나타나는 것에 있다. 왜 글을 읽으면 내 내면의 목소리가 활자를 되뇌는 것처럼 내가 아는 그 사람의 목소리가 글을 읊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유명인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글로 아예 그 사람을 처음 배워나가는 것이고,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사전에 가지고 있던 요만큼의 잔상에 글이 덧입혀지는 것이다.
또 사전에 누가 쓴 글인지 인지하고 읽는 것도 글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있어서 매우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유시민 작가가 A라고 말을 한 것과 이름 모를 방구석 정치평론가가 같은 말을 하는 것은 그 파급력이나 읽는이들의 반응면에서 매우 다를 것이다. (사실 이런 면 때문에 가끔은 글 자체보다는 저자의 네임밸류로 더 회자되는 글과 저서들이 있어서 안타깝다) 돌고 돌았는데, 오늘 말한 그 기분 좋은 우연이 어떤 일이었는지 설명하려고 앞의 얘기를 주절 이주 절이 늘어놓은 것이다. 티스토리가 아닌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글쓰기 플랫폼에서였다. 나는 일주일에 한 2~3번 그 사이트에 들어가서 메인화면에 뜬 글들을 쭉 브라우징 한다. 흥미로워 보이는 제목에 잘 찍은 사진 배경의 글이 있어서 클릭했다. 읽다가 내가 왠지 아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팍팍 들길래, 다른 글들을 읽었다.
뭔가 그 느낌이 확신으로 변했고 작가 소개란과 흐릿하지만 확실하게 보이는 프로필 사진으로 나는 알았다. 내가 생각한 사람이 맞는구나. 이상하게 실제로 길에서 마주치거나 그럴 때보다 글로써 마주치니 더 반가웠다 - 글을 읽는 내내 내가 생각하는 자아, 떠오르는 자아가 있는데 그 사람인가? 를 떠올리면서 읽었는데 맞아떨어졌을 때 은근 쾌감이 있었고 실제로 본지는 꽤 되었지만 그때의 고민들의 내막에는 어떤 더 숱한 고민들이 깔려 있었는지,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업데이트가 되었다. 약간 과장해서 표현하면 유학길 떠나려는 공항에서 우연히 몇 년 만에 친구를 만난 그런 재회의 느낌이었다 - 새로운 도전, 또는 뭔가 마무리지어가는 단계에서 아주 우연히 글로 만난 그런 것.
별거 아닌데 괜한 의미부여라고 느껴졌다면 그만큼 내가 요즘 갈망하는 비슷한 가치의 공유, 진정한 공감이 실생활에서 많이 이루어지지 않아서일 것이다. 의외로, 20대 초반에 술 마시면서 친해진 친구들, 또는 공간이 겹쳐서 친해진 친구들보다 지속적으로 비슷한 가치관과 취미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지인들에게서 더 큰 공감과 위로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오늘 우연히 맞닥뜨린 그 글은 그 사람의 어떤 새로운 면을 내가 발견한 것일까, 아니면 재회한 것일까? 발견이면서도 재회이기에 더 의미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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