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를 분명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긴 했을 텐데 줄거리는 기억이 잘 나지를 않는다.
그런데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따로 있다.
바로 그 어른들은 왜 숫자에 집착하느냐? 에 대한 부분이다.
"Les grandes personnes aiment les chiffres." (p.17, Le Petit Prince)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하고, 새로운 친구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도, 본질적인 것은 하나도 안 물어본다는 내용이 줄줄이 나온다.
나는 숫자를 참 이상한 의미로 좋아한다.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 좋지 숫자 자체를 다루는 것은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어차피 숫자를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내가 찾는 모든 통계는 어차피 있기 때문에 숫자가 가지는 본연의 의미에 대한 믿음은 없다. 대신 정말 쓸데없는 자동차 번호판, 로또 당첨 번호, 이외에 괜한 이성적인 설명으로 충족할 수 없는 이유로 꽂히는 숫자들이 있다.
시험 접수에 대한 압박, 커트라인 이런 것에 대해서 고민이 클 때에는 집에 오면서 보는 자동차 번호판 숫자를 어떻게든 조합해서 내가 필요했던 점수를 맞춰보려고 했고, 혹시 그 점수가 보인다면 일종의 좋은 징조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크고 어렵고 복잡한 숫자들이 많지만 아무래도 우리 삶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숫자들이라면 0과 1, 2, 3, 7, 12와 100정도가 되지 않을까? 오늘은 3에 대한 얘기를 조금 하고 싶다. 3은 내게 오랫동안 되게 안정감을 주는 숫자였다. 3은 아디다스의 3이기도 하고, 건축할 때도 가장 안정적인 도형이어서 삼각대나 크레인도 삼각형이고, 삼위일체라는 말도 있고, 한 개는 너무 적고 2개는 짝이고 4개는 두 짝 일 때 3은 뭔가 0과 10 사이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어떤 완전한 모둠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은 3번보다 훨씬 더 보긴 해야되지만, 글도 최소한 3차 수정본까지 가고, 3 회독 정도는 해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기 시작하는 것들도 있다 - 3, 가장 완전하고 온전한 숫자였다. 그런데 3이 인간관계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복잡해지는 것 같다. 삼각관계가 얼마나 보는 사람들이 재밌으면 2020년 아직까지도 한국 드라마에 단골 소재로 나올까에서부터 3명인 그룹에서, 누군가 한 명은 소외된다는 속설까지.
학교든 동아리든, 동호회든, 어떤 사람을 알고 지내는 것도 3년이 고비가 되는 것 같다. 3년이상으로 쭉 오래 보고 잘 지내면 조금 더 지속되는 만남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안정감을 주던 숫자가 균형을 깨는 숫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홀수이기도 하고 2가 있는 상태서 뭔가 새로운 1이 들어와 한쪽으로 기우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 가위바위보도 삼세판으로 많이 하는 것 아닐까? 결과가 명확하니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3은 정말 잔인한 숫자이기도 하다. 삼진아웃, 비기는 것 따위 없는 삼세판, 너무도 인간 몸에 잔인한 철인 3종까지...
써놓고 보니 요즘 정말 사는 게 재미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3에 대해서 이렇게 영양가 없는 글도 재밌다고 쓰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