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여러줄

enattendant 2020. 12. 5. 18:18

시 필사가 있어 보였던 때가 있어서 대학노트 3권 정도 분량의 영시와 한국 시를 썼었는데 어느새 왜 하는지도 모르겠고, 글씨 연습 이상의 의미가 없어서 접어버렸다. 난해한 시도 있었고, 심오한 시도 있었고 유명 시인의 덜 알려진 시도, 무명 시인의 시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가장 사실적이고 가장 폭력적인 "대령"이라는 시다.

 

시 전문은 여기서 찾을 수 있다: https://www.poetryfoundation.org/poems/49862/the-colonel                                                                                

아마도 여성이자 미국인인 시인이 남미의 어떤 높은 대령님 집에서 저녁식사를 얻어먹으면서 독재 정권을 비판하기 위해서 쓴 시인 것 같은데, 어려운 비유보다는 읽기 쉬운 산문형인 데다가 템포도 빨라 장면 전환과 연출이 굉장히 잘 돼있는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듯하다. 무릎 연골을 아이스크림 푸듯이 빼내거나(to scoop the kneecaps from a man's legs or cut his hands to lace), 처형당한 사람들의 귀를 반건조시켜서 보관하는 것(He spilled many human ears on the table. They were like dried peach halves) 은 너무도 비현실적이어서 더 생생하다. 와인을 들고 "당신 시를 위한 소재거리?"(Something for your poetry, no?) 라고 비꼬는 대령은 극소량의 인류애라고는 상실해버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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