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고, 마음이 지옥이라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이야기.
자본주의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최소한의 자기 앞가림을 한다는 것인데 그러려면 본인이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안주한다는 것은 유지가 아니라 도태이기 때문에.
내가 종종 말하는 "다음 생에는" 레퍼토리를 보면 재미와 평화를 추구하지, 성장과 배움에는 크게 초점이 없다. (eg: 다음 생에는 소로 태어날래, 낙농업에 종사할래, 부자의 애완견으로 태어날래, 소나무로 태어날래 등등)
어제 여의도에서 만난 직장인 동생에게도 다음 생에 레퍼토리를 읊었는데, "언니 이번 생을 잘 살아야 다음 생에도 기회가 주어지는 거야"라는 뼈 때리는 말을 해줬다. 여러모로 고마운 동생이다.
"The power of believing that you can improve"라는 TED 영상이 있다. 보통의 유창한 원어민들과 달리 이 분은 매우 천천히 또박또박 말씀을 하신다. 어떻게 보면 너무 또박또박해서 1.25 배속해서 들어야 표준속도와 맞먹는다고 느낄 정도. "Not yet"이라는 학점을 부여해서 충분히 할 수 있고 잘하고 있다는 동기부여를 심어주자, 평가와 그에 대한 즉각적 확인 (validation)보다는 성취의식을 심어주자 이런 내용이다. 내용은 뻔한데 이 분 딕션이 너무 정확하고 차분하셔서 들을만하다.
Growth 이야기하니까 또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랑 나는 사실 대면으로는 2번 밖에 보지 못했지만, 만날 때마다 술과 밥과 함께 깊은 대화를 나눠서 체감상 훨씬 더 오래, 많이 본 것 같은 친구다. 유튜브도 정말 하나 같이 다 도움이 되는 채널들만 구독하고 나에게 추천도 해준다. 만난 자리에서 즉시 검색해보고 구독 누르고 집에 와서 가끔 보는데, "월가 아재"님만큼 진국인 사람을 최근에 본 적이 없다. 끊임없는 배움에 대한 열정, 지속되는 공부, 정치 사회경제에 대한 식견과 금융 전문지식, 최근에는 딥러닝까지 다 섭렵하신듯하다. 게다가 덤으로 유투버에게는 아주 큰 메리트인 안정적인 목소리와 진행까지.
세상은 넓고 멋진 사람은 많다. 나도 내 나름의 방식으로 멋져져야지.
한 가지 최근 들어 부쩍 느끼는 건데, 꼭 superlative
good --> better --> best 이런 식의 성장과 세계관을 가지고 살 필요가 없다는 겄다.
오히려 사람들은 different와 unique를 좋아한다. 예를 들어 나는, 지는 것도 싫어하지만 (늘 이기기 위한 역량이 충분하지도, 그 불타오르는 승부욕을 실현시킬 의욕도 반쪽 자리 마음이지만), 그것보다 더 싫은 것은 남들과 똑같은 것이다. 우리가 모두 운동선수가 아닌 이상, 꼭 the best가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만 그래도 the best에 대한 동경은 이해한다. 누구나 글을 쓰기 시작하면 한 번쯤은 퓰리처상을 꿈꿀 수도 있고... 굉장히 통과하기 어려운 시험의 수석합격자는 어떤 기분일까... 관료가 되었다면 장관을 한번 해보는 것은? 어떤 회사의 임원이 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기자가 되면 뉴욕타임스나 이코노미스트 기자가 되면 어떨까... 그곳들의 편집국장은? 조각가나 예술가라면 내가 제2의 자코메티나 앤디 워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고민할 수도 있으니까...
최근에 앞서 말한 두 친구와 한 명의 유투버 외에도 내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분 C가 계시다. C와 나는 사적과 공적 관계 중간쯤 애매한 관계인데, 이분은 내가 여태까지 봐온 분들 중에 가장 긍정적이고, 쾌활한 편에 속하신다. 나는 이렇게 특유의 밝고 안정감 있는 분위기의 사람을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첫째는 저렇게 보이려고 엄청 노력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진정 저 결이 저 사람 본래의 default인가. 두번째는, 아 첫번째와 비슷하긴 한데, "사람이 어떻게 저렇지?"이다. 그러니까 나는 밝음을 의심부터 한다. 인생의 더 깊은 슬픔과 우울을 감추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하거나, 사회생활용, 친목용 가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C분과 더불어 "밝음"하면 떠오르는 딱 한명의 다른 사람 A가 있는데, 가면도 아니었고, 엄청 노력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게 그 사람의 기본값이었던 것이다. ㅎㄷㄷ. 이 나이 먹고도 여전히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을 만나면 소름과 같은 충격과 신선한 충격이 동시에 온다.
만약 내가 이번 생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 나를 학교에서 만났더라면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어려웠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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