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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필드트립 - 신당동 박정희 가옥

enattendant 2021. 8. 18. 14:05

필드트립 참 어렸을 때 설레는 말이었는데... 박물관, 미술관, 물 정화시설 (water plant), 수련회, 동물원, 소풍, 체험관, 아쿠아리움, 식물원, 공원.... 아 어떻게 어린 시절은 생각하면 할수록 추억이 더 나오지? 약간 고고학자가 땅굴을 파다가 유물이 계속 나오면 이런 기분이려나? 

대학 와서는 뜬금 없이 경제 수업에서 리움미술관에 간 거 빼고는 필드트립을 간 기억이 거의 없다. 다들 현실에 치이고 바쁘기 때문에 누가 (특히 교수가) 강요해서 어디 갔다 오라고 하면 짜증부터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발적으로 본인이 관심 있는 곳에 갔다 오면 없던 에너지도 솟구치고 뭐라도 배우고 온 느낌이 들어 뿌듯하다. 나는 근현대사나 시사 쪽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신당동에 박정의 가옥이 있다는 걸 알고 나서 짧게 둘러보기로 했다. 마침 요즘 신당동에 주기적으로 갈 일도 있고 우리 집에서도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기 애 가보았다. 게다가 생각해보니 작년 코로나가 한창 심각해지고 있을 때, 폐관되었어서 스치기만 한 아쉬움이 있었기에 더없이 즐거운 관람이었다. 

육영수 여사의 여러 사진들 
산수 ㅎㅎ
박 전 대통령 책상&서재
투샷

짧은 관람이었고 예전 외할아버지 댁이었던 (지금은 허물어진) 광안리 주택과 크게 다를 점이 없어보였다. 올드했고, 단조로웠고, 평화로웠을 것 같다. 휘황찬란한 곳과는 거리가 조금 있었다. 나오는 길에 문화재 관리인 분께서 본 소감이 어떻냐고 하셔서 일반 가정집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답하니, 지어진 당시에는 신당동 일대가 다 판잣촌이여서 이 정도면 굉장히 잘 사는 집이라고 답해주셨다. 거기다 더 붙여 나이 많은 분들 오시면 이게 얼마나 그 당시로는 대단한 거지 감탄한다고 하셨다. 집에 와서는 엄마한테 우리 서울 시내 주택에 살면 안 되겠냐고 여쭤보니 그런 집들은 여름에는 더 덥고 겨울에는 더 춥다고 하셨다. 역시 난 레트로가 더 잘 맞는다. 

서울시 포털에서 가져온 aerial view

집에 가져온 책자에 따르면 "1920년대 서울에는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도성 외곽에 문화주택 단지의 개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문화주택'은 "서양식 주거 문화를 지향하며 새롭게 유행한 가옥으로" 복도와 응접실, 식당 등의 근대적인 설비를 가진 개량 주택이라고 한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전통 주택과 가장 큰 차이점은 "위생 = 문명"이라는 주거인식이라고 한다. 서양식이 = 위생적이라는 명제는 다분히 토론의 여지가 있지만 그때 당시 위생관념으로는 서양식이 더 "위생적"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보기

1927년 12월 8일 조선을 방문했던 이토 추타(伊東忠太)는 “문화주택은 그 나라와 시대에 따라 동일하지 않은 것이므로 일정한 전형이 있을 리가 없다”고 하며, 일본에 만연해 있는 구미 각국의 양식을 모방하는 세태를 지각없는 짓이며 우스운 노릇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문화주택(文化住宅))]

 

이러한 서구식 문화주택에 대한 높은 사회적 선호도는 해방 후에도 지속되어, 전후 복구사업 중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급되었던 공공주택은 서구식 거실 중심의 주택으로 지어졌고, 이들 주택은 예외 없이 문화주택이라 불렸다. 문화주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새마을운동 시기까지 이어졌다.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문화주택(文化住宅))]

지난 세기 우리 사회에서 문화주택의 ‘문화’에는 시대를 뛰어넘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주택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향해야 할 모범답안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문화주택(文化住宅))]

좋은 집에 살고 싶은 욕구, 시장 심리에 의해 결정되는 가격, 수요에 못 따라가는 공급, 부동산 문제는 계속해서 심화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출처: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8/11/2015081100848.html

옛날 아파트 (압구정 현대, 대치동 은마 등)과 문화주택, 불란서 주택 vibe가 좋다. 타워팰리스나 한남 유앤 빌리지, 서울숲 갤러리아 포레는 너무 현대적이다 못해 미래적인 느낌? 

출처: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492564.html

다이어그램 보는 거 즐겁다! 보다 보니, 내가 살지도 않은 시대의 주택들에 대한 노스탤지어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온 단독주택 외가 쪽 광안리 주택들)가 솟구쳤다. 

조금 더 찾아보니, 주택은 흔히 말하는 일반주택, 상품화된 표준주택, 일반인들의 로망이자 사회 상류층이 사는 작품 주택 등이 있다고 한다. 기생충에 나오고, 성북동, 한남동 등에서 보이는 집들을 부를 이름이 생긴 것이다! 작품이라고 불릴 만한 집에 사는 것도 좋지만 소박한 내 집 한 칸(가능하면 아파트가 아닌)도 좋을 것 같다. 가능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