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여러줄

알리오를 알려달라

enattendant 2021. 1. 27. 20:31

노래에 소질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곡만 반복적으로 연습한다면 그 한 곡은 노래답게 부를 수 있다 (micromastery가 이런 거였던가?) 예전에 공강 시간이 생기면 당시 룸메이트와 학교 옆동네 코인 노래방에 잠깐 들러서 각자 18번 곡을 부르곤 돌아왔다. 그 친구는 이승철의 '서쪽 하늘', 나는 백지영의 '잊지 말아요'를 부르곤 했다. 나한테 어느 정도 많이 불러서 노래답게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곡 중에 '잊지 말아요'가 들어갔다. 

 

살면서 잘하면 좋은 스킬과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스킬 등이 있다. 노래와 춤은 그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생존에 필수적이지는 않지만, 잘하면 어느 그룹에서나 환대를 받을 수 있는 재능이다. 반면, 청소와 요리는 조금 더 생존에 필수적이라고 볼 수 있다. 누구나 최소한의 청소와 요리(또는 심한 경우에 조리라도) 없이는 혼자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요리는 음 ...

젊은 제이미 올리버가 한국 케이블 티브이에 나왔던 시절부터 (2003년 즈음)

앤소니 보르뎅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섭렵하고, (2008년 즈음)

어설프게 주방에서 보고 들은 것을 따라 하고 재료 낭비로 어머니의 꾸지람을 받기까지 (학창 시절 내내) 

늘 의욕이 실력을 매우 앞섰었다. 사과 깎고 양파 다지고, 수제비 반죽 깔끔하게 하고, 닭 부위별 해체와 같은 기본적인 스킬을 연마했어야 하는데, 용감하게 처음 해보는 요리들 레시피도 안 보고, 감 타령하다가 농도도 못 맞추고 죽도 밥도 아닌 케이스가 많았다. 그중 아마 가장 기억에 남는 실패작 3가지 하면...

 

1) 바나나 돌 (바나나 꿀 빵을 하려다 수분 조절에 실패, 오븐에서 꺼내보니 떨어뜨리면 깨질 수 있는 돌이 되었다)

2) 라자나 죽 (라자냐가 너무 흐물흐물거려서 틀에서 퍼내다가 으스려졌다)

3) 소고기 술 찜 (boeuf bourguignon을 하려다가 포도주 넣고 알코올을 안 날려버리고 바로 뚜껑 덮고 오븐 직행했더니 술을 머금은 고기 찜이 되었다)가 있다.

 

"잊지 말아요"만 주야장천 불렀던 것처럼 한 가지 요리만 파서 그거라도 제대로 해보자 한 것이 알리오 올리오였다. 크림 파스타는 싫어하니 집에서 해먹을 일이 없고, 토마토소스는 맛있는 시판용 소스에 맛있는 고기, 다량의 양파와 치즈를 떄려 넣어서 나름 입에 착착 감기게 할 수 있었는데 오일 파스타가 그렇게 재현하기가 힘들었다. 약불에 다진 마늘, 생 마늘과 고추를 넣고 적당히 볶아주다가 살짝 덜 익은 면이랑 면수 넣고 소금 간 허브 간 약간 하면 내가 찾아본 조리법은 충실히 이행하는 거였는데... 적게는 2프로 많게는 20프로씩 늘 아쉬웠다. 

해외 airbnb에서 "제발 맛있어라" 빌면서 만든 알리오 올리오 ... 
오늘 저녁으로 요리한 알리오 올리오

무엇이 문제였을까? 치킨 스톡의 부재? 생마늘로 편 쓴 마늘 피스의 부재? 페페론치노 대신 넣은 청양 고추? 아마 셋 다 였을 거다. 특히 스톡이나 육수 베이스 없이 오직 기름과 마늘, 소금, 허브 만으로 레스토랑 오일 파스타를 기대했으니 지나친 욕심을 부렸었나 보다. 

 

결론은 약 3~4년간 여러 번 반복해서 알리오 올리오 흉내를 내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없으면 아쉬운 재료들의 부재로 완벽히 만족스러운 알리오 올리오는 아직이라는 것이다. 

 

집에서 완벽한 알리오 올리오를 해 먹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