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나 제목의 함정

enattendant 2021. 1. 11. 23:55

 

 

황동규 시인은 알지 못했다. 가끔 서점에 기웃거리면 저렇게 단색 프레임에 색 2개를 조합해서 내놓은 문학과 지성사 시집들을 볼 수 있었다. 뭔가 올드하면서 클래식한데 진부하지는 않은 그런 느낌의 디자인이라 늘 소장하고 싶었지만, 시의 특성상 취향도 많이 타고, 읽어도 읽은 거 같지가 않은 때가 많아서 망설여졌다. 그러다 좋은 기회에 10,000원 정도는 내가 공짜로 쓸 수가 있게 되어 어떤 책을 한번 주문해볼까 탐색을 하던 와중, 시집이나 적잖이 얇은 책이 아니라면 요즘 그 가격대에 맞추어 나오는 책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베스트셀러든, 참고서든, 인문서든 과학 서든, 요즘 책은 기본이 13,000원대 이상에서 시작한다. 거기다가 초고화질 음식 사진이나 인테리어 사진으로 도배된 그런 책들은 2만 원 후반대에서 시작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나의 서점 방문이 늘 아쉬운 건, 그렇게 예쁘고 무거운 책들은 막상 사 오지 못하니 뒤적거리다가 오고, 그렇게 읽어보고픈 책들도 다른 베셀들 사이에 섞여 있는 후광 효과가 대단해서 막상 내 방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크게 손이 안 가는 것이다. 

 

"제발 오늘 딱 하루만 조금 마음 편하게 살자"

"딱 하루만 내게 답이 되어주는 방향을 제시해주세요"

"오늘 하루만 내가 하는 걱정, 그리워하는 사람과 옛날 기억이 헛된 미련이나 부질 없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가끔 너무 답이 안 나오거나 어떤 고민을 너무 오랫동안 내적으로 하고 있을 때, 속으로 이런 말을 되뇐다. 이 시집의 제목이 이런 내적 갈등에 한 줄기 희망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어서 골랐다. 실상은 은퇴한 대학교수인 시인이 감퇴하는 건강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코로나 시대의 일상에 대한 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한 명예교수의 일기장과 같은 시들이 잔뜩 실린 거였는데, 공감이 힘들었다. 내가 바라던 시는 2~30대의 젊은 시인들만 쓸 수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