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우연
기분 좋은 우연에 내 인생을 맡기고 싶지는 않지만 내 일상의 한 부분에 늘 찾아와 줬으면 한다.
#1 벨기에에서 중3~고1 때 수학 수업을 듣는데 옆에 굉장히 낯이 익은 친구가 있었다. 무려 2000년대 초반에 부산에서 같이 학교 다녔던 M!
#2 <어쩌다 어른>에서 정신과 의사가 번아웃 증후군에 대해서 설명하는 클립을 보고 있었는데 방청객에 아는 얼굴이 있었다. 카메라가 한 몇 초 잡고 있어서 그 사람인 걸 확신하고 몇 번 돌려보았다. 디엠이나 카톡으로 스샷을 보낼까 하다가 망설여졌다 못 본지가 꽤나 되어서. 사실 아는 얼굴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섭섭하고 언제든 보면 굉장히 반가울 사람이지만 멀어진 거리로 인해 최근에 못 본 사람. 지금 만나면 어색하려나? 그분은 굉장히 인싸라 그래도 분위기가 안 어색해지도록 노력할 것 같고 그 노력이 나에게 보여서 내가 슬퍼질 것 같다.
#3 별 기대 없이 학생/구내 식당에 갔는데 반찬이 맛있을 때.
#4 알고리즘이 아니라 내가 어쩌다 노래 브라우징을 하다가 명곡을 발견했을 때.
최근에 있었던 기분 좋은 우연의 순간들이었다. 지금으로서는 4가 가장 기분이 좋다. 내가 듣는 곡들은 100곡 남짓으로 수년간 크게 변하지 않고 매년 신곡 몇 개가 조금씩 추가되는 굉장히 보수적인 리스트다. 아티스트들도 잔잔한 발라드 느낌으로 부르거나 발성에 바람소리가 많이 들어가는 가수들을 좋아해서 상당히 곡들 간의 느낌이 유사하다 - 백예린, 아이유 창법을 생각하면 된다. 어쩌다 선우정아 님의 "백년해로"와 "도망가자"를 들었는데 고음을 찍을 때, 목소리에 바람 소리가 막 섞이면서 구름 위를 떠다닌듯한데 또 가사는 시적이어서 나의 취향을 완벽히 저격했다. 지하철 사람 구경도 지쳤었는데 이 노래들 덕분에 즐겁게 집에 올 수 있었다.
내일은 또 어떤 기분 좋은 우연이 생길까?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