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하고 산뜻한
마지막으로 아침에 일어났는데 개운하고 산뜻하고, 오늘 하루가 기대되었던 적이 언제일까?
까마득하다.
사실 조금 더 개운해지고 싶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이미 정해져 있다.
잠들기 전에 폰이나 아이패드를 보지 않고, 상체 근력운동을 조금 더 하고, 술과 카페인을 줄이고, 젊음의 특권인 정크 푸드를 덜 먹는 것. 대개 상식적이고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거 안 하면 되는 거다.
이것들을 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못하는 거다. 그럴만한 체력이 안된다. 술도 카페인도 줄이려면 정신력이 조금 더 강해야되고, 엎드려서 아이패드 안 보려면 눕는 것을 거부할 만큼 체력을 더 길러야 되고, 정크 푸드(라고 쓰고 라면이라 읽는다)를 덜 먹으려면 조금의 수고를 더해 MSG와 바이바이 해야 한다. 5초의 귀찮음은 5초에서 끝나지 않는다. 청결을 유지하고 가방을 싸고 밖에 나가고,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뭐라도 하고, 집에 돌아오고 또 씻고 얼마나 귀찮은가? 귀찮음 장벽을 하루에도 수없이 많이 넘어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사람들이 피곤하게 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유난을 떠는 데에도. 그렇게 해야, 좀 덜 귀찮게 사는 사람들이 건강한 습관을 유지하고 살아간다. 남한테 피해가 안 간다면 내가 유난 좀 떨어도 뭐 상관 없는 거 아닌가? (상관은 없는데 주변인들이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다, 이기적이다, 무섭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다만, 내가 그렇게 해서 개운해야 그들에게 nice 해질 수 있다. 체력이 별로면 주변인들에게도 까칠해진다.
안타깝게도 나의 부지런함은, 기복이 심하다. 전염병이 가져온 물리적인 자유가 (자유라고 하는 것은 굳이 그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많이 사라졌기에... "거 뭐 원격으로 하면 되는데! 뭘 귀찮게 ...") 모든 것을 유동적으로 만들어 놓은 탓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귀찮음의 특권을 누리는 데서 오는 짜릿함과 유노윤호와 같은 사람을 보면서 오늘 하루의 귀찮음 에너지를 저울질하는 것뿐이다.
근데 귀찮음이라는게 또 마약과도 같아서 총량을 정해놓던지 안 그러면 진짜 끝도 없는 롤러코스터를 탔다가, 그 기구 또 타려고 줄 서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획기적인 변화! + 오늘부터 열정 열정! 이런 게 아니라 하루하루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변화로 안정감을 유지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기복이 너무 심해버리면 trendline를 그리기가 힘들어지고 나 지금 어디 와있는지 전혀 감이 안 잡힌다. 왜 꼭 그럴 때 있지 않은가 - 되게 잘 아는 사람을 오랜만에 보았거나, 사소한 것으로 다투었을 때 그 사람이 굉장히 낯설어 보이는? 여기서 그 다른 사람이 내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된다.
올해 막바지 가서는 귀찮음 에너지 총량 컨트롤로:
1. 블로그 글도 덜 파편화되고
2. 평균적으로 좀 더 개운하고
3. 사람들에게 더 나이스해지고
4. 기복이 덜 한 스.테.이.블한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